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포그렌즈(fog Lens)로 찍은 몽환적 숲속 사진처럼, 자욱한 안개비에 젖은 짙푸른 산길을 몇 구비 돌고 돌아,
‘도대체 미술관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의심의 끝자락에서 만난 폴라미술관 !
짙은 녹음과 어우러진 투명하고 세련된 글라스 건축물이 나의 모든 의구심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지난 2016년 추석연휴에 오래된 온천관광지인 일본 하코네현을 여행하던 중, 사실 별 기대없이 렌트카를 이용해 인근 폴라미술관을 찾았다.
이 미술관이 유명한 것은, 르노아르의 ‘레이스 모자를 쓴 소녀’를 비롯하여 모네, 샤갈, 세잔, 고흐, 피카소 등 우리 눈에도 친숙한
19세기 프랑스 인상파의 유려하고 낭만적인 색채의 작품들과 ‘에콜 드 파리’ 등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화장품회사답게 일본 근현대 도자기에서 공예, 화장품 도구 등 다양한 전시물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폴라그룹의 소유주 스즈키 츠네시는 그동안 수집한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 건립을 계획했다.
그러나 하코네의 아름다운 자연을 해칠 것을 우려한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에 폴라그룹은 식물생태계를 그대로 보전하고자 철저한 사전조사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한 노력을 통하여,
당초 설계보다 미술관 높이를 낮게 수정하는 등 자연친화적인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산의 경사지 부분에 74m의 호(弧)를 파서, 그 위에 미술관을 올리는 방식의 실험적인 건축물을 고안해 낸 것이다.
설계를 맡은 日建設計(니켄세케이)는, 건축이 자연을 압도하지 않도록 건축물의 높이를 주변 숲의 나무들보다 높지 않게 8m로 제한하고,
건축물이 혼자 강하게 드러나기보다, 하코네의 자연 속에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어우러지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디자인하였다.
5개 층으로 이루어진 폴라미술관은 경사지를 따라 모든 전시실을 지하에 배치하여 입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그러나 지하라고 하여,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이나 이우환미술관처럼 어두운 땅 속으로 들어가리라는 상상은 하지 마시라.
원시림 같은 자연경관을 커다란 유리창을 통하여 그대로 전시실로 끌어들이고, 경사지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지하 2층, 3층 내려갈수록 자연의 품에 안긴다.
마치 자연이 건물을 품은 것 같다.
폴라미술관은 노출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디자인 집합체다.
3개층 높이의 거대한 유리 블록벽체를 근간으로, 밀도 짙은 주름형태의 전시실 천정과 하코네의 숲과 하늘이 쏟아지는 홀의 스카이라이트,
샵과 카페, 산책로로 이어지는 목재데크, 외부의 버스정류장과 주차관리실, 하다하다 화장실 소품까지 정교하고 사려깊은 디자인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가 오는 평일 오후, 1인 1,800엔의 적잖은 관람료에도 이어지는 발길을 보니, 연간 관람객이 약 30만명이라는 숫자가 의심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외진 산골미술관이 별다른 외부지원도 없이 운영가능하다는 것은 전시품도 중요하겠지만 미술관 건물 자체의 생명력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래저래 눈이 호사한 미술관나들이였다.